조선 제일의 침의 허임 침구학

posted Jul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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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기자/스포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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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7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회의원 박수현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남도가 후원한 “조선 제일의 침구 허임 침구학 조명”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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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박수현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허임 선생은 상민 출신이었으나 뜸과 침에 띄어나 선조 때는 왕을 치료하기도 했다”며 “광해군 때는 허준과 함께 의사로서 뛰어난 이들을 기록한 ‘의관록’에도 기재될 정도로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침의로 명성을 날렸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계속하여 “ 공주는 백제의 고도였으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도의 교육 . 문화 . 정치의 중심지로 수많은 문화관광 자원이 있다”며 “허임 선생의 발자취도 중요한 문화관광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 손중양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오늘 세미나는 약 400년 전에 살다 가신 우리나라 국가대표 침의 허임 선생과 그의 침구학에 관해 조명하고, 오늘날 그를 어떻게 기리며 문화관광자원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며 “우선 침구경험방 간행 370주년을 맞아 기념세미나를 선뜻 주최해주신 박수현 국회의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실 임선빈 박사는 주제발표에서 “미천한 신분인 부모로부터 뛰어난 재능을 함께 물려받은 허임은 임진왜란이라는 변수로 인해 ‘침의’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자신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왕세자 광해군을 모시고 침의로 치종교수로 전란의 상흔을 위무하였으며 그 공으로 당상관에 이르고 위성공신 3등에까지 책봉되었으며 나아가 광해군의 총애까지 받으면서 도성에서 가까운 경기도 주요고을의 목민관까지 역임하였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공신에 책봉된 지 10년만에 공신호는 삭훈되고 관직에서도 쫓겨났다.

비록 공주가 허임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만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침구서를 집필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 앞으로 공주의 역사인물로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

허임관련 유산을 빼어난 자연경관과 수 백 년의 문화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부전동과 연계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언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한국한의학연구원 전종욱 박사는 허임 ‘침구경험방’의 한국의학사에서의 의의란 주제발표를 통해 “성인들은 병을 미리 예방하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병을 미리 알았으니 이것이 훌륭한 것이다. 중풍에는 반드시 먼저 나타나는 자각증상이 있으니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의 감각이 둔해져서 자유롭지 못하거나, 손과 발에 힘이 약하거나 힘살이 약간 당기는 감이 있는 것이 그것이다”며 “이렇게 되면 반드시 3년 안에 심한 풍병이 생기게 된다. 마땅히 영위를 고르게 해야 하니, 미리 유풍탕이나, 천마환이나, 가감방풍통성산을 먹으면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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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기자 gu03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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