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수많은 신화만 떠돌아다니고 있죠"

posted May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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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수많은 신화만 떠돌아다니고 있죠"

 

 
 

박태균 교수 "신화 뛰어넘어 역사적 팩트를 봐야"

 

김종필 자서전 집필 계획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박태균(47)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쓴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에는 전문 역사서에서도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자료가 가득하다.

 

1950년 8월 옛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이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클레멘트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1953년 6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1975년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위기 등과 관련된 자료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외향은 대중 역사서를 지향하지만, 이 책에 담긴 역사적 팩트들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특히 스탈린의 편지는 남침설과 북침설, 미국에 의한 남침 유도설 등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한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충격적인 자료다.

 

이 편지에서 스탈린은 고트발트에게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 미국의 관심이 아시아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 틈을 타 소련은 유럽에서 세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문서대로라면 소련이 미국을 아시아로 유도해 벌어진 전쟁이 곧 한국전쟁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를 뒷받침할 주변 문서까지 발굴된다면 박 교수의 2005년 저작 '한국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은 물론 한국전쟁과 관련한 수많은 역사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

 

박 교수를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대 국제대학원 6층에 자리 잡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의 책상 위에는 카네이션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박 교수는 대중 역사서를 표방하며 읽기 쉽게 쓴 이 책에서 스탈린의 편지와 같은 희귀 문서를 집어넣은 이유에 대해 "일반 대중들도 이러한 중요한 자료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대중 역사서라도 전문성과 객관성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이 책의 서문에도 잘 드러난다.

 

"쉽게 쓴다는 것이 곧 소설이나 수필을 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자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곧 역사가의 의무가 아닐까? 재미있되 사실에 기초한 서술. 필자는 2005년 이후 출판한 모든 책과 논문에서 이 두 가지 원칙을 견지하려고 노력해왔다."(8쪽)

 

박 교수는 역사적 팩트의 준엄함을 무시한 채 주장과 해석으로만 가득한 책을 역사서로 포장하는 한국 현대사학계의 병폐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역사학자들이 팩트를 도외시하니까 수많은 신화만 떠돌아다니고 있다"면서 "기억만으로 역사를 말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는 팩트에 근거한 기억도 있지만 팩트가 없는 기억들도 있다. 그게 바로 신화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박 교수가 요즘 논문을 쓸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바로 '신화를 넘어서'이다. "그러한 신화들을 뛰어넘어서 진짜 팩트가 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번 책을 쓴 목적 중의 하나도 '역사적 팩트들을 제대로 알자'는 저의 문제 의식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에서 제시된 새로운 자료들은 외국 사료까지 살피며 역사적 팩트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박 교수의 노력이 낳은 결과물인 셈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우리가 내용과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세계사에서는 다르게 해석되는 사건들에 대해 세계사의 평가를 소개한다. 또한 각각의 사건 모두에 역사로 보는 오늘, 오늘로 보는 역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현대사 저작임에도 '닉슨과 마오쩌둥의 만남'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조직'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수립' 등과 같이 국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에만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한국사는 세계사와 동떨어진 특수한 역사가 아니며 보편적인 세계사의 일부이며 그 안에서 특수성을 갖는다"면서 "한국사를 더 넓은 관점에서 한발 떨어져서 본다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쁘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인 1980년대 이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대통령 기념관, 외교 사료관 소장 문서들이 30년 경과 비공개 기록물 공개원칙에 따라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사 전공을 진짜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5.18 광주민중항쟁, 8.3 긴급조치, 재벌의 기원 등과 관련한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연구자들이 아주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봉암 연구'에 이어 요새 고(故) 장준하 선생의 평전을 집필 중인 박 교수의 목표는 정치인생 대부분을 권력의 핵심에서 맴돌며 영원한 2인자로 불렸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 책의 지은이 소개 부분에서 아예 대놓고 김종필 씨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나름의 구애인 셈이다.

 

"김종필 씨가 정보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다 털어놓긴 어려울 거예요. 그러더라도 그걸 그냥 갖고 가시는 건 역사에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어요. 이분은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냉전시대에 있었던 일들 대부분은 신화가 많아요. 신화를 넘어서는 방법은 신화의 중심에 계셨던 분들이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 교수는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와 팩트를 알려주려면 김종필 씨와 같은 분들이 말해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과연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까?

 

 
 

changyo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8 10:0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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