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크린에서 나로호까지…대덕특구 대표기술들

posted Nov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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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덕연구단지의 모습. << 연합뉴스 DB >>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1973년 11월 대덕연구단지 조성 고시가 제정된 지 40주년을 맞았다.

 

1978년 3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출연연 최초로 대덕특구에 입주한 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하 출연연)과 민간 연구소들이 대전에 속속 둥지를 틀었다.

그동안 대덕특구 내 출연연이 개발한 기술은 우리나라를 반도체 수출 1위 국가로, 이동통신 강국으로, 우주 클럽 가입국으로 만들었다.

 

◇ 대한민국 대표 표백제 '빨래∼ 끝!'

시판된 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부들의 사랑을 받는 세제 '옥시크린'은 한국화학연구원이 낸 최고의 히트작이다.

화학연이 1978년 4월 대덕특구에 입주한 뒤 처음으로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1980년 1월 개발해 1984년 동양화학공업에서 출시한 이 제품으로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표백제를 국산화해 연간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수입대체효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산소계 표백제 최초로 미국 '그린실(Green Seal)' 환경 마크를 획득해 친환경성까지 인정받았다.

 

세계시장은 이전까지 '락스'로 대변되는 염소계 표백제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옷을 삶지 않고도 삶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발생기 산소' 기술 덕분에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인센티브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라 기술이전료는 한 푼도 받지 못했고, 다만 후일 동양화학 이회림 회장이 대덕특구 스포츠센터 건립에 수영장 건축 기금을 기부했다.

 

◇ 반도체와 정보통신 강국으로 '우뚝'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개발을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정부는 1981년 3월 가전제품 중심의 전자산업을 반도체와 컴퓨터, 전자교환기 등 3대 전략품목을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내용의 '전자공업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198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한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서울대 부설 공동체연구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3년 만에 4M DRAM 개발에 성공했다.

 

이어 16M DRAM, 64M DRAM을 잇따라 개발한 뒤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M DRAM을 개발하는 데 성공, 우리나라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발판이 됐다.

 

이동통신 산업 역시 후발주자로 출발했다.

 

1984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처음 차량 전화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해도 시스템이나 단말기는 전부 수입에 의존해 왔다.

 

당시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시간분할방식(TDMA)이 표준화돼 있었고, 유럽에서는 GSM(Group Special Mobile), 일본에서는 PDC 방식을 상용화해 저마다 세계표준으로 채택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ETRI도 처음에는 TDMA 방식을 목표로 했지만 머지않아 수용 용량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제3의 이동통신 방식을 물색하던 중,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인 퀄컴이 개발한 'CDMA 이동전화실험시스템'을 만나게 됐다.

 

가입자 용량이 아날로그 방식의 10배, TDMA 방식의 3배 이상인데다 전파 효율성과 기지국 배치 면에서도 뛰어났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이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ETRI는 정부와 산업계를 설득, 1991년 6월 퀄컴사와 공동기술개발계약서에 서명했고 마침내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방식을 상용화하게 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든지 10여년 만에 세계 통신시장을 재편했다.

 

2006년 세계 최초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 상용화, 2007년 LTE 시스템 핵심기술 개발, 2011년 세계 최초 4세대 이동통신시스템 'LTE-Advanced' 개발 등을 이뤄내며 이동통신 기술의 진화를 선도해왔다.

 

◇ 우주로 가는 문을 열다

 

지난 1월 30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우주를 향해 발사됐다.

이번 발사 성공으로 우리는 자력으로 개발한 로켓을 자국 발사대에서 쏘아올려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 이른바 '스페이스(우주) 클럽' 11번째 가입국이 됐다.

 

2002년 8월 100㎏급 나로과학위성(STSAT-2C)을 우리 힘으로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고 정상 작동시키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나로호 개발사업이 10여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인공위성 개발 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됐다.

 

유학생과 연구원들이 영국 서리대학에서 위성 기술을 배워 와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적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개발했다.

 

지구 표면을 관측하기 위한 지표면 촬영장치 등을 비롯해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통신시스템, 우주방사선량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들이 탑재돼 우리나라 위성 최초로 한반도 영상을 획득해 냈다.

 

이어 우리별 2·3호, 다목적 실용위성 1·2·3·5호, 천리안, 과학기술위성 1호, 나로과학위성에 이어 최근 과학기술위성 3호까지 쏘아올리면서 우리나라는 11기의 공공 인공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나로호 발사 성공을 바탕으로 2020년까지 순수 국내 기술로 '한국형 발사체(KSLV-Ⅱ)'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형 발사체의 길이와 무게는 각각 46.5m, 200t으로 나로호보다 훨씬 길고 무겁다.

 

로켓 설계는 물론이고 연소기, 터보 펌프 등 엔진 핵심 부품과 연소 시험 등에 대한 기술력을 확보하게 되면, 7년 안에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가 달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jyou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28 06: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