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배우 박정자 "박수도, 화환도, 열광도 믿지 않아"

posted Jun 23,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뷰어로 보기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뷰어로 보기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배우 박정자 "박수도, 화환도, 열광도 믿지 않아"

 

'백조의 노래' 무대에 선 박정자(사진제공:연극열전)
 
 
 

옴니버스극 '14人(in) 체홉' 출연..'백조의 노래' 주역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어두컴컴한 무대 한쪽에서 한 노인이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온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술로 발갛게 물든 노배우 '바실리 바실리치'다.

 

공연 후 분장실에서 잠깐 잠든 사이,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불이 다 꺼진 극장. 이곳에 남아 어둠을 견디는 이 퇴물 배우는 말한다.

 

"나이 일흔이면 다른 사람들은 새벽예배를 다니고 죽음을 준비하는데, 나는……. 아아! 욕지거리에, 술 취한 면상에, 이런 어릿광대 옷이라니……."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백조의 노래'는 퇴락한 노배우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50년 동안 무대에서 늙어간 이 연극배우는 영광스런 박수갈채를 추억하기도, 아픈 사랑을 떠올리기도, 보잘것없는 현재의 모습을 탓하기도 하며 밤을 지새운다.

이 극에 힘을 불어넣는 주인공은 연극배우 박정자(71)다.

 

바실리 바실리치와 일체가 된 듯한 이 배우의 음성과 몸짓은 25분짜리 짧은 무대에 긴 여운을 남긴다.

 

최근 공연이 개막한 극장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그를 만났다.

 

예순아홉의 노배우 '바실리 바실리치'가 하는 대사는 곧 그의 말이기도 하다고 했다.

 

"나는 관객을 믿지 않는다는 대사에 깊이 공감합니다.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관객은 극장을 나서면 자신의 어릿광대를 잊어버리죠. 체호프는 그걸 알았던 겁니다. 배우는 노예에 불과하며, 다른 사람의 노리개, 광대, 익살꾼이라는 것. 사람들은 자기들 허영심 때문에 친분을 맺으려 하지만, 배우에게 자기 여동생이나 딸을 줄 정도로 자신을 비하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니 배우는 관객의 박수도, 화환도, 열광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죠."

 

이상한 일이다. 관객과 함께한 50년의 세월 동안 그가 느낀 게 그들에 대한 '불신'이자 '배신감'이라니.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감정은 불완전한 인간의 만남에서 필연적이라고 했다.

 

"사람은 본래 속물적인 존재인 거니까.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다가도, 쉽게 무대를 외면해 버리는 게 관객인 거죠. 극 중 대사가 관객에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뭐 저는 아닌가요. 저도 꽤 속물적인 인간이거든요. 우리의 그런 불완전함에 대해 얘기하는 겁니다."

 

'백조의 노래' 무대에 선 박정자

노배우 바실리 바실리치(박정자)와 프롬프터 니끼따 이바늬치(박상종)의 모습 (사진제공:연극열전)

 

 

 

 

곳곳에서 묻어나는 촌철살인의 대사도 그렇지만, 박정자 특유의 깊고 또렷한 중저음의 목소리도 무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 문학성이 강한 고전에 어울리는 그의 톤은 바실리 바실리치가 '햄릿', '리어왕', '오셀로'의 대목을 외쳐 보일 때 특히 빛을 발한다.

 

고전 희곡 연출에 강한 한태숙 연출가가 "'리처드 3세'의 주인공으로도 손색없다"고 했을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여온 그다.

 

하지만 늘 비슷한 배역에 같은 톤으로 하는 연기는 지양한다고 했다.

 

"어떤 역할이든 표현할 수 있는 그릇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어야 해요. 남자든 여자든 가릴 것 없이 맡은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야죠."

 

배우 박정자

(사진제공:연극열전)

 

 

'오이디푸스'의 남성 예언자 테레시아스에서 러시아 남자 노배우 '바실리 바실리치'까지 성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제 노처녀 역할에 탐을 냈다.

 

심약한 젊은이가 혼기를 놓친 노처녀에게 청혼하던 날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체호프의 또 다른 단막 희곡 '청혼'의 주인공 말이다.

 

"노처녀 역할을 저처럼 나이 든 사람이 능글맞게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오면서도 고루한 느낌 없이 자유롭게 무대를 누빈 그는 올 하반기에도 바쁘게 극장을 오갈 예정이다.

 

지난 4월 서울에서 선보인 '안티고네'의 지역 공연이 시작됐고, 무대 미술가 이병복 씨가 남편 고(故) 권옥연 화백과 함께 꾸린 무의자 박물관에서 하반기에 작품을 올릴 계획이기도 하다.

 

"날 더러 이제 좀 쉬면서 하시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때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죠. 죽으면 쉴 텐데, 벌써 그만할 필요가 있겠어요? (웃음)"

 

▲연극 '14人(in) 체홉' = '백조의 노래'를 포함한 체호프의 단막 희곡 4편과 단편소설 1편을 세 편씩 번갈아 엮어 올리는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 7월7일까지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1544-1555.

 

 

hrse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23 10:44 송고


  1. No Image

    춘천 의암호 명소 자전거도로 내달 개통

    춘천 의암호 명소 자전거도로 내달 개통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호반의 도시' 춘천시를 둘러싼 의암호의 명소가 될 자전...
    Date2013.06.24
    Read More
  2. KBS 수신료 인상 추진 잰걸음..진통 예상

    < KBS 수신료 인상 추진 잰걸음..진통 예상> 지난해 2월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TV수신료 긴급 기자회견에서 ...
    Date2013.06.24
    Read More
  3. No Image

    "개성역사유적 세계유산 등록은 민족·인류의 자랑"

    "개성역사유적 세계유산 등록은 민족·인류의 자랑" 북한대표 "개성역사유적 보호관리 지도서 곧 시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
    Date2013.06.24
    Read More
  4. No Image

    청렴한 조직을 위해 노사가 발 벗고 나선다

    [최혜빈 기자/스포츠닷컴] 청렴한 조직을 위해 노사가 발 벗고 나선다 선진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노조임원「청렴지킴이」위촉 국...
    Date2013.06.23
    Read More
  5. 류승완 "박찬욱 감독 글 읽으며 영화보는 눈 키웠다"

    류승완 "박찬욱 감독 글 읽으며 영화보는 눈 키웠다" 日서 '베를린' 특별강의·좌담회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류승완 ...
    Date2013.06.23
    Read More
  6. 배우 박정자 "박수도, 화환도, 열광도 믿지 않아"

    배우 박정자 "박수도, 화환도, 열광도 믿지 않아" '백조의 노래' 무대에 선 박정자(사진제공:연극열전) 옴니버스극 '14人(in) 체...
    Date2013.06.23
    Read More
  7. "어른도 홀린 애벌레 두 마리의 매력요? 웃음이죠"

    "어른도 홀린 애벌레 두 마리의 매력요? 웃음이죠" 인기 애니 '라바' 연출 맹주공 감독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일단 화면...
    Date2013.06.23
    Read More
  8. "성인 36%·중고생 53%, 6·25 발발연도 몰라"

    "성인 36%·중고생 53%, 6·25 발발연도 몰라"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남하하는 수천명의 피난민과 북상하는 아군의 모습. <<연합...
    Date2013.06.23
    Read More
  9. No Image

    서울국제도서전 아쉬움 속 폐막..멋쩍은 '국제'

    서울국제도서전 아쉬움 속 폐막..멋쩍은 '국제' 국내행사 편중.."영미권 주요 출판사 거의 참가 안해" 눈요깃거리론 국내서도 한...
    Date2013.06.23
    Read More
  10. '연애의 온도' 상하이영화제서 신인 작품상 수상

    한국영화 '연애의 온도', 상하이국제영화제서 수상 21일 제16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안 뉴 탤런트 어워드' 부문에서 한국...
    Date2013.06.23
    Read More
  11. CJ헬로비전, '하루종일 시사회' 개최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CJ헬로비전[037560]은 29일 서울 신촌 아트레온에서 알뜰폰 브랜드인 헬로모바일의 홈페이지 회...
    Date2013.06.23
    Read More
  12. CHING, 중국 무협극 '동자스님! 소공공' 방송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드라마 전문채널 채널ING(CHING)는 중국 무협드라마 '동자스님! 소공공'을 20일 오전 11시40분 ...
    Date2013.06.23
    Read More
  13. 로페즈,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2천500번째 스타

    '스타' 등극했어요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소재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된 가수 겸 배우 제니퍼 ...
    Date2013.06.23
    Read More
  14. 존 레전드, 슈퍼소닉 무대서 공연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미국 출신 인기 솔 뮤지션 존 레전드(John Legend)가 오는 8월 14-1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
    Date2013.06.23
    Read More
  15. 동방신기, 日싱글 첫주 14만 장 오리콘 2위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한류스타 동방신기가 지난 12일 선보인 37번째 일본 싱글 '오션'(OCEAN)이 발매 첫주 14만872...
    Date2013.06.23
    Read More
  16. 김남길 "일본에서 가수로 데뷔해요"

    데뷔 싱글 재킷 공개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다음 달 일본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하는 배우 김남길의 데뷔 싱글 '로망'...
    Date2013.06.23
    Read More
  17. 이시영 "복싱하면서 배우로서 여유 찾았죠"

    공포영화 '더 웹툰: 예고살인' 주연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이 시나리오는 저한테 들어온 것도 아니었는데, 우연히 읽...
    Date2013.06.23
    Read More
  18. 하의실종 패션·란제리 룩..여성가수 노출 경쟁

    솔로곡 '나쁜 기집애'로 활동 중인 씨엘 경쟁 속 생존 전략인가 vs 성 상품화인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투애니원의 씨...
    Date2013.06.23
    Read More
  19. '횡령 혐의' 가수 비, 재수사 결론도 무혐의

    횡령 혐의로 고소당했다가 한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가수 비(본명 정지훈·31)가 약 2년에 걸친 검찰의 재수사 끝에 다시 무...
    Date2013.06.23
    Read More
  20. 여름철 공적 자외선, 몸에 해롭지만은 않아

    <<연합뉴스 DB>> 뼈 형성·칼슘흡수 돕는 비타민D 합성에 관여…암 억제 효과도 있어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해가 내리쬐...
    Date2013.06.2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94 495 496 497 498 ... 551 Next
/ 551